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8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군부가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의료진 탄압을 본격 시작했다. 국립병원 의료진들의 시위가 공무원의 광범위한 참여에 불을 붙인데다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한 사실도 의료진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군부가 시민들을 납치한다는 소식도 알려지면서 미얀마 내 저항 분위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13일 현지 매체에 따르면 전날 오전 미얀마 제2 도시 만달레이에서 경찰이 시민 불복종 운동을 지지한 킨 마웅 르윈 만달레이의과대 총장의 자택을 급습, 그를 영장 없이 체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웃 주민들이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며 강하게 항의하자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밤에는 중부 마그웨 지역에서도 경찰이 아웅란병원 의료과장을 체포하려다 이웃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됐다. 비슷한 시기 북부 샨주에서는 사복 경찰관 2명이 시민 불복종 운동에 참여하는 한 외과 의사의 자택에 들이닥쳤다. 남서부 에야와디 지역에서도 시위에 참여하며 개인 의원에서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던 한 의사가 경찰에 체포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군부가 의료진을 겨냥한 것은 이들이 이번 시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군부 쿠데타 이후 처음으로 항의 시위가 벌어진 3일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과 만달레이에서는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 수백 명이 거리로 나섰는데, 이는 수천 명의 공무원ㆍ공기업 직원 참여로 이어졌다는 게 현지 매체의 설명이다.
12일에도 양곤에서 1,000여명의 의사들이 가운을 입고 시내 중심가를 행진하며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 등 문민정부 인사들의 석방을 촉구했다. 지난 9일 수도 네피도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 2명이 중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현지 매체와 외신에 알린 것도 의사로 알려졌다.
의사들만 체포되는 것은 아니다. 군부가 쿠데타에 반기를 드는 인사들을 잇따라 체포하거나 체포를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과 관련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 퍼지면서 시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쿠데타 이후 정치인, 시민운동가, 언론인, 승려, 학생 등 350명 이상이 구금됐으며 대부분 적법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미얀마 정치범지원연합은 “사랑하는 가족들이 어떤 혐의로, 어디로 끌려갔는지는 물론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이날 양곤에서는 시위대 수천 명이 운집한 가운데, ‘야간 납치를 중단하라’는 글이 적힌 손 팻말도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경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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