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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20년만에 돌아왔다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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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이 8월 18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거리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카불| AP연합뉴스

이슬람 수니파의 과격 무장 원리주의 조직으로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다스린 탈레반이 돌아왔다. 올초 추운 겨울에는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독단적인 행동 때문에 국제사회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미국이 돌아왔다고 기뻐했다. 그리고 잇따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여름 끝자락에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탈레반이 돌아왔다. 문명사회가 결코 반길 수 없는 20년 만의 귀환이다.

종교의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는 탈레반의 부활은 인류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실로 절망적인 일이다. 그런데 자칭 진보적이라고 하는 사람 중에 탈레반을 마치 외세에 저항해 아프가니스탄의 독립을 쟁취하려고 하는 열사로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연 그럴까? 이 지면을 빌려 야만, 비문명을 상징하는 대명사 탈레반의 속살을 벗겨보고자 한다.




아프가니스탄-험한 땅, 다양한 사람들

프랑스만 한 크기의 아프가니스탄은 한반도보다 3배가 크고, 전 국토의 75%가 산악지형으로 이뤄져 있는 다민족국가다. 우리나라도 산악이 70%를 차지하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나, 아프가니스탄은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과 이어지고, 5000~7000m 높이의 힌두쿠시산맥이 나라의 가운데를 가르는 험한 지형이다. 국토의 50%가 해발 2000m에 있다. 이토록 험준한 지형을 가진 곳이기에 신이 세상을 창조한 후 남은 땅을 그냥 던져 생긴 곳이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운데)가 8월 17일(현지시간) 칸다하르 공항을 통해 아프간에 입성했다.  AFP연합뉴스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운데)가 8월 17일(현지시간) 칸다하르 공항을 통해 아프간에 입성했다. AFP연합뉴스

완전 내륙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은 파키스탄(국경선 2430㎞), 이란(921㎞), 투르크메니스탄(804㎞), 우즈베키스탄(144㎞), 타지키스탄(1357㎞), 중국(92㎞) 등 모두 6개의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19세기 영국과 러시아의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 시절부터 영국, 소련 그리고 최근 미국까지 초강대국의 공격 속에서도 살아남아 제국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지형상 그만큼 공략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이전에는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 정복 시절부터 7세기 이후 이슬람 시대의 가즈나조, 몽골, 티무르조, 무굴제국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정복자의 고속도로였다. 험한 지형이지만 여러 지역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잇는 가스, 원유, 전력 중개선이 지나는 곳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정복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싸운 아프간 부족들은 마치 머리가 여럿 달린 히드라(Hydra) 괴물과 같아 알렉산드로스가 머리를 치면 그 자리에서 머리가 세개 나왔다”며 알렉산드로스의 아프가니스탄 정복의 어려움을 표현했다. 또 1880년 아프간 전쟁 당시 영국의 로버츠(Roberts) 장군은 “아프간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 않을수록 우리를 덜 싫어한다는 내 말이 옳다.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을 정복하거나,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인도를 침략하려고 한다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다. 우리가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라고 하면서 아프가니스탄 주민의 독립성을 표현했다. 아프가니스탄 공략이 무척 힘들었다는 반증이다.

2019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의 인구는 약 3800만명이다. 프랑스만 한 크기인데도 인구가 적은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살 만한 땅이 적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이중 42%인 1500만~1600만명은 파슈툰족이다. 파슈툰족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타직(Tajik) 사람들(27%)이고, 하자라(Hazara) 사람들과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각각 9%를 차지하고 있다. 모두 14개 민족이 존재한다. 민족과 언어가 서로 다른 데다 혈연 중심의 부족사회 전통이 강력해 통합적인 국가를 이루기가 애초에 어려운 곳이다. 이슬람 이전 아프가니스탄처럼 혈연 중심의 부족주의 전통이 강한 아랍에서 혈연보다 신앙을 중시하는 이슬람이 발흥했지만, 아랍사회가 부족주의를 극복하지 못했듯, 아프가니스탄 역시 이슬람을 받아들였어도 혈연이 신앙을 이기지는 못했다.

파슈툰족, 탈레반의 저수지

탈레반은 아랍어로 학생을 뜻하는 ‘탈립(talib)’에 파슈툰어의 복수어미 ‘안(an)’이 붙은 형태로 ‘학생들’이라는 의미이다. 이슬람을 가르치는 마드라사에 다니는 신학생을 뜻한다. 파슈툰어는 동부페르시아어로, 탈레반의 주축인 파슈툰족이 쓰는 말이다. 파슈툰족의 주 거주지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지역이다. 그런데 파키스탄에 아프가니스탄보다 약 3배가 더 많은 파슈툰족이 산다. 두 지역의 파슈툰 사람들을 가르는 경계는 1893년 영국이 그은 듀란드선(Durand Line)이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영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인도의 경계를 그었고, 인도에서 분리 독립한 파키스탄이 자연스럽게 이 국경선을 인수했다.

그러나 탈레반을 비롯해 역대 아프가니스탄 지배자 그 누구도 듀란드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의 고민이다. 무려 2430㎞에 달하는 국경선에 파키스탄은 부랴부랴 초소를 만들었지만, 국경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험준한 국경의 약 200곳에서 월경을 할 수 있다. 미군이 탈레반을 제압하기 어려웠던 것도 바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위기에 몰리면 파키스탄으로 줄행랑을 쳤기 때문이다. 월경한 탈레반을 닭 쫓던 개처럼 미군은 멍하니 바라보아야만 했다. 파키스탄에서 군사작전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8월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수송기 안에 탈레반을 피해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앉아 있다(왼쪽). 같은 날 아프간인들이 비행기 탑승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로이터연합뉴스

8월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출발한 수송기 안에 탈레반을 피해 탈출하려는 아프간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앉아 있다(왼쪽). 같은 날 아프간인들이 비행기 탑승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로이터연합뉴스

종교문맹 데오반디

파슈툰을 기반으로 하는 탈레반은 신학생들이다. 이슬람교는 수니파와 시아파로 크게 나뉘는데, 탈레반은 수니파다. 그런데 수니파도 학파에 따라 생각이 다양하다. 탈레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학파는 하나피법학파에서 파생한 인도의 데오반디다. 데오반디는 델리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도시 데오반드의 이슬람학교를 가리킨다.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배 전에 무굴제국의 땅이었다. 무굴제국은 소수의 무슬림이 다수의 비무슬림을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지녔다. 그런데 영국에 무너지면서 무슬림은 급변한 정치사회 질서에 적응해야만 했다.

근대적인 삶의 양식을 접하면서도 자신의 전통을 잊지 않기 위해 이슬람 개혁운동 프로그램이 데오반드(Deoband)의 이슬람 교육기관에서 시작했다. 이슬람 신앙전통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는데, 이를 도시이름을 따서 데오반디(Deobandi)라고 불렀다. 인도의 데오반디는 정치적 이슬람 운동이 아니었다. 과거의 전통을 급변한 당대의 삶에서 어떻게 재현하느냐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1947년 파키스탄이 인도와 분리됐다. 인도의 데오반디 운동이 파키스탄에서도 이어졌다. 문제는 파키스탄의 데오반디는 정치적 성격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의 데오반디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의 데오반디는 달랐다. 게다가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은 수니 이슬람 세계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란은 시아파 국가다. 세속왕정을 타파하고 들어선 이슬람공화정은 민주주의와 이슬람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민주주의체제이다. 그런데 이란은 자국의 변화만을 추구하지 않고 주변 국가에도 이슬람 혁명 정신을 전파하고자 노력했다. 이에 기겁한 이웃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정을 지키고 이란의 이슬람혁명을 막고자 자국의 건국 종교이념인 와하비(Wahhabi) 사상을 전파했다. 석유판매대금을 활용해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모스크를 짓고 이슬람문화 사업을 후원했다. 파키스탄의 데오반디도 이러한 영향을 받았다. 아프가니스탄 역시 파키스탄 데오반디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역시 파키스탄의 데오반디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국의 데오반디는 철저한 흑백논리로 무장한 과격급진주의다. 피아 구별이 확실하고, 시아파를 무슬림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여성을 철저하게 공적인 공간에서 배제한다. 탈레반의 반여성·반시아 행태는 비로 이러한 과격한 데오반디 운동에서 나온다.

8월 18일(현지시간) 탈레반 조직원이 검은색 스프레이로 가려진 미용숍 외벽의 여성 사진을 지나가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여성 인권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탈레반이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8월 18일(현지시간) 탈레반 조직원이 검은색 스프레이로 가려진 미용숍 외벽의 여성 사진을 지나가고 있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여성 인권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탈레반이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AFP연합뉴스

해석을 잘못하면

탈레반은 여성을 온전한 인격을 갖춘 존재로 보지 않는다. 여성에게 교육이나 직업 선택의 자유는 없다. 여성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가정뿐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이슬람의 경전 코란은 상속에서 여성의 몫을 남성의 반으로 규정한다.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불합리하지만, 한국 역시 과거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상속에서 불리했다. 장남의 몫은 1.5, 차남과 미혼 딸은 1, 기혼인 딸은 0.25였다.

7세기 이슬람 이전 아랍사회에서 여성에게는 상속권이 없었다. 따라서 코란에서 여성에게 상속권을 준 것은 엄청난 개혁이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정신을 챙기는 대신 남성과 여성의 몫 차이를 상속과 무관한 분야로 확대해서 적용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상속비율을 남녀의 지적 수준의 차이로까지 확대해석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여성의 지적 능력이 남성의 반밖에 안 된다는 논리로 비약한다. 그러한 일이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또 무고를 막기 위해 간음을 고발하려면 반드시 4명의 증인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코란의 가르침이 있는데, 무고 방지라는 본뜻을 읽지 못한 채, 강간당한 여성이 4명의 증인을 제시하지 못하면 간음을 범한 사람이 돼 중형을 받는 경우도 생긴다. 근본주의자의 이슬람 해석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들이다.

파슈툰왈리

그런데 탈레반은 데오반디, 와하비의 영향에 파슈툰족의 오랜 관습인 파슈툰왈리(Pashtunwali)까지 혼합한 가치체계를 견지한다. 이슬람 이전부터 오랜 세월 불문율처럼 내려온 파슈툰왈리는 명예, 용맹, 환대, 용서 등 파슈툰족 남성으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제시한다. 파슈툰족은 특히 외세의 침략 때는 하나가 돼 싸우는데 이 또한 파슈툰왈리의 가르침이다. 2001년 9·11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준 혐의로 미국의 공격을 받아 무너지면서까지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한 것도 파슈툰왈리의 덕목을 따른 것으로 본다.

문제는 파슈툰왈리의 여성관이다. 여성을 사악한 존재로 본다. 따라서 비단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과격한 여성관이 아니더라도 탈레반이 여성에 가하는 폭력의 원인을 파슈툰왈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탈레반을 보호하고 옹호하는 파슈툰족들의 모습 역시 무슬림 형제애에서만 찾을 필요가 없는 셈이다. 파슈툰왈리가 동질감의 바탕인 것이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8월 17일(현지시간) 카불 장악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와 언론의 독립적 활동을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8월 17일(현지시간) 카불 장악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이슬람 율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와 언론의 독립적 활동을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독립투사?

탈레반은 외세에 저항하는 독립투사들일까?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전혀 모른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은 인구의 반도 되지 않는 파슈툰족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세력이다. 탈레반은 반대하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처단한다. 다민족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을 구성하는 비파슈툰족에게 탈레반을 독립투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비파슈툰족에게 탈레반은 억압자, 학살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탈레반을 인정해야 하나?

탈레반이 세력을 공고히 다져갈수록 국제사회는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형국이다. 여성과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 집권 세력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20년 전 탈레반을 인정한 나라는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3개국뿐이었다. 지금은 중국이 탈레반을 인정할 것 같은 분위기다. 적어도 선진문명국이라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익을 위해, 경제적 실익을 위해 탈레반의 악행을 보고도 눈을 감아야 하나? 돌아온 탈레반은 인류의 진보를 이야기하는 문명국을 시험대에 올려두고 웃고 있다. 참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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